간섭(干涉)
nonasking · 2026-09 · English version
작성 과정에 AI를 깊이 활용한 글입니다. 정확히 어떻게였는지는 글 끝에 밝혀 두었습니다.
이 글은 연작의 3편으로, 1편 「향일성」과 2편 「변광성」을 전제로 합니다.
본문에 자살에 관한 역사적 서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24시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옆 별의 빛
2편은 전원이 변광성이라고 썼다. 그러면 마지막 물음이 남는다. 저마다 빛나는 존재들은 서로를 어떻게 견디는가.
결맞은 빛 사이에 중립은 없다. 사람들은 그 빛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한다. 사랑이든 질투든 증오든, 전부 그 빛을 원점으로 잡은 방위다. 나방이 등을 돌려도 그 등의 각도는 빛이 정하듯, 미움조차 무엇이 밝은지에 대한 자백이다. 관계할지는 선택이 아니고, 어떻게 관계할지만 선택이다.
반론이 하나 들어온다.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에게 무관심한 빛들도 있지 않은가. 있다. 그러나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중립은 관계 안의 균형이고, 무관심은 관계 이전이다. 파동은 결맞을 때만 간섭한다. 파장이 겹치지 않거나 공통의 기준이 없는 두 빛은 아무리 가까워도 무늬를 만들지 않고 그냥 더해진다. 보강도 상쇄도 없이 나란히 있을 뿐이다. 무관심은 네 번째 반응이 아니라 세 반응의 영점, 아직 위상이 없는 상태다. 그리고 그 영점은 안정 상태가 아니다. 결맞음은 배치가 만든다. 옆자리에서 몇 해를 무관심하던 두 빛이 같은 일에 배치되는 순간, 파장이 겹치고 기준이 생기고, 무관심은 그날로 반응이 된다. 위상이 잠기는 것이다. 관계할지가 선택이 아니라는 문장은 그래서 참이다. 결맞은 순간부터 선택지에서 중립이 사라지고, 결맞을지는 대개 배치가 정한다.
그 어떻게가 셋이다.
쬐기. 곁의 빛을 제 광합성의 재료로 받는 것. 1편의 판별식대로 제 잎이 일하는 동안의 입력이며,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 쬐기가 아니라 새삼의 등기다. 그 빛이 내 정체성의 영역 밖이거나, 지금 자기가 안정할 때 가능한 반응이다.
겨루기. 그 빛이 내 영역이라 데는 것. 비교와 모방. 분발로 이어지면 생성적이고, 시기로 고이면 부식적이다.
끄기. 쬘 수도 겨룰 수도 없을 때 빛 자체를 없애려는 것. 낙인, 백래시, 꺾기.
셋은 병렬의 선택지가 아니라 한 경사면이다. 어느 경로로 미끄러지는지는 세 변수가 정한다. 그 빛이 내 영역인가. 도달 가능해 보이는가. 지금 자기가 안정한가. 심리학은 앞의 둘을 정리해두었다. 테서의 자기평가 유지 모델은 타인의 성취가 내 정의 영역 밖이면 반사 광택이 되고 안이면 비교의 상처가 된다는 것을 보였고, 지라르는 모방과 경쟁이 한 엔진의 두 출력이라는 것, 그리고 모델이 라이벌로, 라이벌이 장애물로 미끄러지는 에스컬레이션을 보였다. 질투와 따라 사기는 같은 회로에서 나온다.
이 유형학에서 면제되는 관측자는 없다. 동족의 신호 앞에서 쬐고, 제 영역의 빛 앞에서 겨루기의 불씨를 누르고, 채점의 충동을 느끼는 것. 채점 충동은 끄기의 저용량 형태다. 이 자백이 있어야 유형학은 낙인이 아니라 해부가 된다.
윤리는 짧다. 시기는 죄가 아니라 정보다. 라이벌은 내 욕망의 지도다. 성숙은 겨루기와 끄기의 충동을 쬐기나 분발로 환전하는 규율이고, 빛을 끄는 것으로 문제를 푸는 공동체는 어두워진다.
간섭의 물리학
빛의 간섭은 물에서 먼저 보였다. 토머스 영은 왕립연구소 강연을 묶어 1807년에 펴낸 책에서, 유리 바닥 수조 아래 등불을 두고 물결의 그림자를 스크린에 던지는 장치를 그렸다. 두 파원의 간섭에 대해서는 연못에 같은 크기의 돌 두 개를 동시에 던져 보라고 썼다. 퍼져 나간 동심원이 겹치는 자리에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선다. 빛이 파동이라면 물결과 소리에서 이미 검토한 효과들을 빛도 겪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논증이었다. 작은 불 하나가 물을 비추어 빛의 정체를 증명한 셈이다. 그러니 이 편의 물결은 빛의 대역이 아니라 빛의 원본이다.
빛은 충돌하지 않는다. 간섭한다.
두 파동이 만나는 지점의 역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과. 파동은 서로를 지나가고, 지나간 뒤에는 상대가 없었던 것처럼 각자 계속 간다. 간섭은 겹치는 구역에서만 일어나고, 영구적 교환은 없다. 물결 둘이 만난다고 서로의 높이를 얻어 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소모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제퍼슨이 아이디어의 본성을 촛불로 설명했을 때 적은 것이 이것이다. 내 촛불에서 제 초에 불을 붙여 가는 자는 나를 어둡게 하지 않고 빛을 얻는다. 쬐어도 줄지 않는 것이 빛의 회계다.
둘째, 재분배. 줄지 않는다고 항상 더해지는 것도 아니다. 위상이 맞는 자리에서는 둘의 합보다 밝아지고, 어긋나는 자리에서는 영이 된다. 그런데 상쇄된 자리의 에너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강된 자리로 옮겨간 것이어서, 무늬 전체의 평균은 정확히 둘의 합이다. 간섭은 우주에 빛을 더하지 않는다. 어디가 밝을지를 정할 뿐이다.
이 두 조항이 상생의 정의를 고친다. 상생은 총량의 이득이 아니라 분포의 이득이다. 두 별이 정렬해도 하늘의 빛은 늘지 않는다. 그 빛이 어디로 가느냐가 달라진다. 같은 두 광원이 배치에 따라 서로를 증폭시키기도, 지우기도 한다. 그러므로 상생은 인격의 문제이기 이전에 위상 정렬의 기술이다.
한계가 하나 있다. 중첩은 선형의 법칙이다. 진폭이 지나치면 선형성이 깨지고 파도는 부서진다. 2편의 안전 특약이 여기서도 유효하다.
위상 정렬의 세 기술
첫째, 같은 방향 보기. 미메시스적 경쟁은 유한한 대상을 함께 원할 때 생긴다. 경합재의 문제다. 그런데 둘이 원하는 것이 절대라면 뺏을 것이 없다. 절대는 비경합재이기 때문이다. 절대를 향한 굴광의 공유가 수평 경쟁의 해독제다. 1편의 원정리가 여기서 회수된다. 향일성은 수직의 법이면서 동시에 질투의 해독제다. 생텍쥐페리가 사랑을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썼을 때, 그가 적은 것이 이 정렬이다. 같은 문장의 앞머리에서 그는 그 방향을 우리 바깥에 있는 공통의 목표라고 적었다.
파동 방정식은 그 문장을 두 번 확인한다. 하나는 위상 배열이다. 여러 파원이 위상을 맞추면 특정 방향으로 빔이 서고, 그 방향의 세기는 파원 수의 제곱이 된다. 정렬된 열 개의 광원은 열 배가 아니라 백 배의 빔을 낸다. 단, 그 방향에 대해서만. 같은 방향을 보는 별들은 그 방향에 대해 개별 광도의 합보다 밝다. 간섭이 빛을 더하지 않는다는 법 아래에서, 합보다 밝아지는 것이 허용되는 유일한 자리가 공유된 방향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파다. 마주 보고 진행하는 같은 진폭의 두 파동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제자리에서 출렁이는 정상파가 되고, 영원히 잔잔한 마디가 생긴다. 서로만 바라보는 두 파동은 진행하지 못한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결맞은 파동만이 진행하며 보강한다.
둘째, 표준 촛불 교환. 서로의 빛을 키 재기의 재료가 아니라 측량의 기준으로 쓰는 것. 상대의 주기로 내가 재지 못하던 거리를 재고, 내 주기로 상대가 재지 못하던 거리를 재준다. 저항이 선물인 관계가 그 실측 사례다. 도장의 매트 위에서 전력으로 부딪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저항을 딛고 자란다. 봐주는 손이 아니라 버티는 손이 스승이다. 동족은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만난다. 겹침을 해소하려 들면 관계가 밋밋해지고, 겹침을 측량 기준의 교환으로 전환하면 관계가 도장이 된다. 역학은 통과다. 측량은 두 파동이 겹치는 구간에서 일어나고, 지나간 뒤 각자는 각자로 남는다. 상대를 바꾸지 않고 상대로 재는 것. 교환의 조건은 융합이 아니라 통과다.
셋째, 그믐 교대. 주기가 어긋난 변광성 둘은 하늘을 어둡게 두지 않는다. 한쪽이 저물 때 다른 쪽이 밝다. 역학은 맥놀이다. 주기가 정확히 같고 위상이 반대인 두 파동은 영원한 상쇄에 갇히지만, 주기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합은 영에 머무를 수 없다. 차이가 교대를 보장한다. 2편 제3조, 광도는 서로 다르고 모두 변한다는 조항이 여기서 증명으로 돌아온다. 경쟁자는 상대의 그믐을 기회로 읽고, 동행은 당직으로 읽는다. 2편의 심사 기준이 여기서 기술이 된다. 그믐의 동행은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되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당직은 회귀를 조건으로 서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그믐도 있고, 그 곁에서 교대할 빛은 영영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서는 당직이 있다면 그것은 빛의 교대가 아니라 다른 배선의 일이고, 2편이 하늘의 회계 바깥으로 보낸 그 곁이 곧 아래 조항에서 배선을 얻는다.
지하 조항이 하나 붙는다. 위상 정렬은 하늘의 일만이 아니고, 곁의 가치도 하늘의 회계로 다 계산되지 않는다. 숲의 나무들은 지하의 균류망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사이로 양분이 옮겨간 관측이 있다. 이 그림은 낭만적으로 과장되어 논쟁이 붙었지만, 뿌리 사이로 자원이 옮겨간 관측은 남는다. 다만 그 경로가 균사망인지는 미결이다. 사람 사이의 영양도 하늘이 아니라 지하로 흐른다. 숭배가 아니라 뿌리 무역이다. 눈부시지 않고, 조용하고, 상호적이고, 도달 가능한 경로. 그리고 성체의 나무 둘이 붙는 연리지는 전간의 융합이 아니라 상처 자리의 부분 접목이다. 양쪽의 수피가 같은 자리에서 오래 눌려 있어야 형성층이 닿는다. 접합점 몇 개에 별개의 수관. 완전 융합은 사랑의 완성형이 아니라 상호 차광이다.
고도 정리
절대의 고도가 수평의 평화를 결정한다.
앵커가 신의 높이에 박힌 사람에게는 어떤 인간도 태양 자리를 위협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경쟁 없는 채광이 가능하다. 절대가 낮게 걸린 사람, 자기 건축물이나 지위나 특정 인간의 높이에 앵커를 박은 사람은 그 높이의 모두와 싸운다. 에고의 영역에서 성숙한 공명이 드문 이유가 이것이다. 앵커가 낮을수록 하늘이 붐빈다.
역학의 이름은 결맞음이다. 첫 절의 반론이 여기서 정리로 돌아온다. 결맞음은 공통의 기준에서 나온다. 공유된 절대가 없는 두 사람 사이에는 상생도 상쇄도 없고, 무관계만 있다. 관계가 있으려면 같은 기준 시계가 먼저 있어야 한다.
같은 방향 보기가 기술 중의 으뜸인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방향을 위로 잡으면 옆이 비워진다.
권력 동결 정리
광도에는 시간의 경사가 있다. 연장자가 먼저 빛나고 먼저 바랜다. 자연 상태에서 이 경사는 평화롭게 교대한다. 앞선 별이 저물고 뒤의 별이 차오르는 것은 하늘의 정상 운행이다.
그 경사가 권력으로 제도화되는 순간 교대가 금지된다. 권력이 된 위계는 광도의 자연 교대를 금지한다. 앞선 자는 저물 수 없어서 굳고, 뒤의 자는 차오를 수 없어서 마른다. 양쪽의 빛이 함께 동결된다. 정상파의 마디가 그 형상이다. 마주 본 채 고정된 두 파동 사이에는 영원히 어두운 점이 생기고, 그 점은 파동이 멈추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동결은 관용구로 굳어 있다. 한국 속담은 아비만 한 자식 없다고 하고,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한다. 출생의 순서가 광도의 순서를 영구히 정한다는 선언이다. 교리의 판본은 탈무드에 있다. 앞선 세대가 천사의 자식이라면 우리는 사람의 자식이고, 앞선 세대가 사람의 자식이라면 우리는 나귀와 같다. 후대가 전대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제안 앞에서 게마라는 그럴 리 없다고 반문한다. 교대 금지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해독제는 순서의 교체가 아니라 구조의 상대화다. 공유된 절대가 서열보다 높으면 위계는 이정표가 된다. 도장이 그렇다. 띠의 색이 있어도 흰띠와 검은띠는 전력으로 구르고, 그러면서 둘 다 자란다. 띠가 기술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이쪽에도 관용구가 있다. 순자는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푸르다고 썼다. 배움이 제 바탕을 넘어선다는 비유이고, 후대는 이것을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는 축복으로 읽어 굳혔다. 공자는 뒤에 오는 이들을 두려워할 만하다고, 오는 자들이 지금만 못하리라고 어찌 아느냐고 했다. 게마라의 반문보다 천 년 앞선 답이다. 공유된 절대가 서열보다 낮으면 위계는 감옥이 된다. 띠가 곧 옥좌이기 때문이다. 이정표의 위계는 넘어서기를 축복하고, 감옥의 위계는 넘어서기를 금지한다.
빈의 삼각형
이 기술들의 대조 실험이 이미 한 세기 전 빈에서 수행되었다.
타우스크는 기생의 표본이다. 1편이 새삼이라 부른 등기다. 자기 빛이 있었다. 「영향 기계」는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빛의 등기소를 프로이트의 서명에 걸었다. 태양이 고개를 돌리자 꺼진 것은 자기 빛의 등기부였다. 일식이 밤이 되는 것은 광원이 하나뿐인 하늘에서만이다.
프로이트는 소등과 회피의 표본이다. 분석을 거절했고, 제자에게 위임했고, 그 분석마저 끊었다. 사후의 편지에서 그는 그립지 않다고, 장래의 위협으로 여겼다고 적었다. 애도 없이 처리된 라이벌은 그 영역에 잔향으로 남는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한 사람이 라이오스를 실연했다.
전반부의 살로메는 상실 광원 추격의 표본이다. 유년의 신이라는 잃어버린 절대를 위대한 남자들 속에서 재조달하려 했다. 수직의 갈망을 수평에서 조달하려는 시도. 1편의 판별식이 그 결말들을 이미 부검했다.
그리고 프로이트와 살로메의 이인조는 상생의 실증이다. 같은 남자가 타우스크와는 상쇄했고, 살로메와는 수십 년을 보강했다. 변수를 짚으면 셋이다. 살로메는 후계 경쟁의 당사자가 아니었고(구조적 영역 분화), 두 사람은 서로의 빛을 측량 기준으로 교환했고, 같은 방향을 보았다. 같은 광원들, 다른 배치, 반대의 결과. 간섭의 결과는 인격이 아니라 배치의 함수다.
이 삼각형에서 걸어 나오는 문은 하나뿐이고, 그 문의 이름은 1편의 계보에 이미 있다.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인간 태양을 섬기는 회로의 파괴가, 별들의 하늘로 들어가는 입구다.
별자리
이제 세 편이 접힌다.
위로는 좇는다. 절대는 추구되는 것이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미도달의 궤도가 나이테를 만든다. 안으로는 켠다. 객관의 태양 자리는 공석이지만 내 하늘의 조명은 내가 켜고, 그 자리는 불가양이다. 옆으로는 정렬한다. 빛은 뺏기지 않고 간섭하므로, 상생은 착한 마음이 아니라 위상의 기술이다.
뿌리는 아래에, 태양은 위에, 사람은 옆에. 그 도식에서 이 세 편이 맡은 것은 위와 안과 옆이다. 아래로 얽는 일과, 광도와 시간이 다른 별들 사이의 일은 여기에 다 적히지 않았다.
같은 빛을 좇는 별들은 서로에게서 뺏을 것이 없다. 서로의 주기로 거리를 재고, 서로의 그믐에 당직을 서고, 닿은 적 없는 거리에서 각자가 내보낸 것만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빛을 좇는 별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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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I와 대화한 기록들을 재료로, 나와 AI가 변증법적으로 교전해서, AI의 손을 빌려서 타이핑했다.